인터뷰

[노다 사토루 인터뷰] 슈에이샤 1만 자 인터뷰 #2

피리카 2023. 1. 17. 01:03

골든 카무이를 그린 신념으로 이어지는 한 통의 편지...노다 사토루 1만 자 인터뷰 #2

아이누 사람들의 모습을 정면으로 그려내며 대박을 터뜨린 모험 활극 만화 골든 카무이. 작중 아이누 문화를 그리는 데 있어 작가 노다 사토루 씨의 신념이 되었던 것, 그리고 최종회에 담은 생각이란… (전 4회 중 제2회)

(#1에서 계속)

박물관이 '골든 카무이'에 가져다준 공적

아이누와 관련된 박물관이 이바지한 역할에 대해서도 마지막 회에서 언급됐었죠.

네. 키라우시나 치카파시의 마키리를 만들어 주신 우라카와 타하치 씨라는 80세 이상의 사냥꾼 겸 공예가분이 계십니다.
우라카와 씨와는 지금도 교류가 있습니다만, 젊었을 적 공예를 시작했을 때는 박물관에 다니며 수장품으로부터 기술을 배웠다고 합니다.
"내가 만든 것을 보고 후대의 아이누가 따라 해주니까."라고 하며 박물관에도 작품을 많이 납품하고 있습니다.
다른 아이누 공예가들도 박물관에 가서 자극받고 있다고 합니다. 박물관은 아이누 문화를 보호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하나의 사례죠. 그 밖에도 예를 들면 아시리파의 여름 신발이 있습니다. 포도 넝쿨로 만든 스투케레인데 이건 이제 만들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그래서 오사카 국립민족박물관에 부탁하여 아이누 문화 연구자인 사이토 레이코 선생과 홋카이도 대학 준교수 키타하라 지로타 선생의 입회하에 납작하게 수장되어 있던 신발을 마네킹에 신겨 입체적으로 촬영했습니다.
키타하라 선생님도 이런 형태로 관찰하는 것은 처음이라고 해서, 열심히 기록하였습니다. 박물관이 없으면 할 수 없었던 일이죠.
일본 전역의 박물관 학예사들로부터 많은 협력을 받았습니다.
덧붙이자면 사이토 선생님은 일본인(和人)이고 키타하라 선생님은 아이누를 뿌리로 둔 선생님입니다. 마지막 회 내레이션의 "아이누와 일본인의 협력으로 후세에 전해지고 있다."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것입니다.

정통 아이누 문화로 오해받아버린 묘사도…

그 밖에도 아이누어 연구의 시조라고 불리는 긴다이치 쿄스케 씨의 책도 새로 그려 넣었습니다. 치바 대학 명예교수 나카가와 히로시 선생님이 말하길, "적어도, 제대로 된 아이누어 연구자 중에서 긴다이치 쿄스케 씨의 공적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습니다."라고 하니, 그것은 알아 두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스나자와 쿠라 씨의 저서 중에서도 긴다이치 씨와의 교류가 쓰여 있고, 아이누 분과 눈물을 흘리며 이별을 아쉬워하는 인정있는 인품도 기록되어 있거든요.
저는 취재 시 가능한 한 직접 가서 제 눈으로 확인하고 있습니다.
또한 오래된 자료를 읽고 찾아 헤매다 보면 인터넷에서 검색할 수 있는 것은 세계의 극히 미미한 부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아이누뿐만 아니라 마타기나 니브흐, 윌타, 사할린에 관한 것, 메이지 시대 홋카이도 같은 것도요.
이 자료들에 적혀 있는 정보는 거의 인터넷에 올라가 있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연재 중에 아이누 소재를 그리면, 때때로, 나카가와 선생님이나 유식자분으로부터, "이것은 무엇을 참고로 하셨습니까?"라는 코멘트를 받았습니다. '인터넷에 쓰여 있었다' 같은 말은 부끄러워서 할 수 없어 이 책의 몇 페이지를 바탕으로 그렸다는 이야기를 주고받았습니다.

확실히, 치타탑은 두드릴 때 치타탑이라고 말하지 않는다고 나카가와 선생님으로부터 지적이 있었다든가…?

네. 사실 그거는 '캐릭터 붙이기'랑 '개그'가 목적이었어요. 아시리파 씨 집안의 독자적인 규칙이네요. 실제로 게재되었을 당시에는 감수 선생님들이나 아이누 분들 등, 누구에게도 지적받지 않았습니다. 분명 여러분들도 '캐릭터 붙이기'나 '개그'라는 것을 알아주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몇 년 전에도 매체의 이름은 잊어버렸습니다만, 신문이나 잡지 인터뷰에서 '아시리파 씨네 집의 규칙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만, 예상보다 너무 입에 붙는지 이것이 정통 아이누 문화라고 오해받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힌나힌나'도 첫 등장 이후 작중에서 몇 번인가 '감사하는 말'이라고 소개한 바 있습니다. 그 외에도 작중에서 몇 번인가 분명히 밝혔는데, 역시 입에 붙어선 지, '맛있다'라는 뜻이라는 오해가 여기저기서 보이는 것 같습니다.
또 눈치챈 분들도 많겠지만, 사실 스기모토는 아이누어에 익숙하지 않은 일본인이기 때문에 '치타탑(チタタㇷ゚)'이라고 말할 수 없어요. '치타타푸(チタタプ)'라고 굳이 적었습니다.
'힌나힌나'에 대해서도 스기모토는 스스럼없이 쓰도록 굳이 그렸습니다. 그게 캐릭터 붙이기에 충실할 것 같아서요. 그러한 묘사의 고집도 오해를 불러일으킨 원인일지도 모릅니다.
모처럼 조언해 주셨기 때문에, 이 인터뷰에서도 분명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실사화 시에는 그렇게 생각되지 않도록 해주었으면 좋겠다고도 전하였습니다. 저는 아이누 문화로 소개하는 것은 자료에 실려 있지 않다면 그리지 않겠다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골든 카무이를 그려온 신념

마지막 회로 돌아가겠습니다. 잡지 게재 시보다 단행본 가필에서 아이누의 긍정적인 면이 더욱 보강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무슨 신념이 있었을까요?

물론입니다. 현재 개최되고 있는 '골든 카무이 전'에서는 제가 수집한 아이누 민구를 전시하고 있는데, 제작자님 중 한 분인 후지타니 루미코 씨라는 아이누를 뿌리로 한 여성으로부터 편지를 받았습니다. 몇 년 만의 편지였습니다.
그 편지가 제가 그려온 신념의 의도를 단적으로 나타낸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래에, 그 내용을 여러분께 전하고 싶습니다.

"1997년에 카노 시게루 씨에 의해서 구 토인법이 폐지, 그 호칭이 없어졌을 때는, 매우 기뻤습니다. 그런데 골든 카무이는 그때만큼 기쁩니다. 아는 사람 중에 90세가 넘은 할머니가 있는데 손자에게도 자신이 아이누 피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털어놓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골든 카무이 덕분에 손자한테 자기가 아는 아이누 단어를 알려줄 수 있게 됐다고 정말 너무 기뻐하더라고요. 골든 카무이는 아이누가 아이누라고 말하기 좋은 세상으로 만들어줬습니다. 아이누 문화를 좋은 의미로 넓혀 주셔서 감사합니다."

작품이 현실 사회에도 아주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실례죠.

대칭적으로 제가 골든 카무이에서 차별 등 부정적인 측면을 일부러 드러내어 강조해서 그리면 아이누 분들이 기뻐했던 사실이 모두 사라져버릴 위험성이 있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물론 후지타니 루미코 씨의 이야기가 아이누 모두의 의견은 아닙니다.
아이누에게도, 일본인에게도, 여러 역사관, 이데올로기를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만 말할 수 있는 것은 아이누 분들은 일본인과 공정한 관계를 원하는 분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 생각에 기대어 함께 살아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마지막 회를 그렸습니다.
그래서 구원이 된 사람이 있었다는 것만으로 저는 만족합니다.
다만 최근에도 아이누 뿌리를 가진 한 젊은 여성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이 작품이 시작되면서 주변에서 '사실 나도 아이누의 피를 갖고 있다'고 털어놓으신 분이 3명이나 돼요."라고 알려주셨습니다. 후지타니 씨의 이야기가 사소한 일례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차별을 강조하면 아이누가 아이누라고 할 수 없는 사회로 되돌아가는, 그럴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하세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연재 개시 전에 홋카이도 아이누 협회에 취재하러 갔습니다.
그때 "불쌍한 아이누는 이제 그리지 않아도 된다. 그런 건 더 이상 읽고 싶지 않아. 새로운 것을 읽고 싶다. 강하고 멋있는 아이누를 그려줘. 겁먹지 말고 사토루 군 마음대로 그려라."라고까지 해주셨습니다.
아이누 문화를 단순한 소재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밝고 즐겁게 그린다면 이 만화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저는 제가 옳다고 믿었던 접근 방식으로 이 작품을 그린 것입니다.
물론 '그건 아니야!'라는 의견도 있을 거예요.
싸우는 방법에는 다양한 접근법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정말 무언가를 위해 활동하고 싶다면 자신의 방식과 자신의 이름으로 제로에서부터 알려 나가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3에서 계속